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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대 그리스 수학] 고대 그리스 수학 이오니아와 피타고라스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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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문명의 기원

그리스 세계의 중심은 몇 세기에 걸쳐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로 둘러싸인 지역이었는데 그리스 문명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기원전 600년까지 그리스 식민지는 흑해 연안과 지중해 연안을 따라 대부분 흩어져 있었다. 수학에서 새로운 물결은 이러한 주변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 점에서 연안의 식민지, 특히 이오니아의 주민들에게는 두 가지의 이점이 있었다. 곧, 그들은 개척자 특유의 대담함과 풍부한 상상력이 있었고 지식의 원천인 두 개의 중요한 하천 유역에 상당히 가까이 살았던 것이다. 밀레투스의 탈레스(기원전 624~548년쯤)와 사모스의 피타고라스(기원전 580~500년쯤)에게는 더욱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고대 학문의 중심지를 여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어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정보를 직접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는 기하학을 배웠던 듯하고, 칼데아 사람인 계몽 군주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가 다스리던 바빌로니아에서 탈레스는 천문학 표와 도구를 구했을 것이다. 탈레스는 기원전 585년에 그 해의 일식을 예언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이 전설이 역사적 확실성이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일식은 지구상의 진짜 일부분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바빌로니아에 그러한 예언을 가능하게 하는 일식표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한편 그노몬(gnomon), 곧 해시계는 바빌로니아에서 그리스로 들어온 것이 분명하고, 또 물시계는 이집트에서 들어온 것 같다. 그리스인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처럼 빨리 선조를 뛰어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손을 댄 것은 모두 빨리 진보했다.

■ 피타고라스 학파의 오각별

피타고라스 학파의 좌우명은“만물은 수이다(All is number)”라고 전해진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천체의 운행에서 노예의 값까지 주변의 대상에 수의 척도를 적용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피타고라스 학파의 좌우명이 메소포타미아와 강한 친근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전히 피타고라스의 이름이 붙어 있는 정리조차 바빌로니아인의 정리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하는 까닭은 피타고라스 학파가 처음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추측을 입증할 만한 수단은 없다. 피타고라스가 이 정리 또는 그 증명의 발견과 관련해서 소를 한 마리(다른 학설은 백 마리)를 희생물로 바쳤다는 전설은 이 학파가 채식주의를 신봉하던 점으로 보아 믿기 어렵다. 이런 전설은 다른 몇 개의 정리에 대해서도 보이나 마찬가지로 신빙성이 없다. 최초의 피타고라스 학파 구성원들은 바빌로니아인이 알던 기하학적 성질에 정통했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에우데무스`―`프로클로스의 <주석>이 ‘우주도형(곧, 정다면체)’의 작도를 피타고라스 학파의 업적이라 하여도 의문은 남는다. 아마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는 황철광(이황화철) 같은 결정에서 보았을 터이나 <원론>(Elements) 제``8`권의 주석은 피타고라스 학파가 정다면체 가운데 세 개, 곧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십이면체밖에 몰랐다고 한다. 특히 이 마지막 정십이면체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에톨리아의 파두아(Padua) 근처에서 기원전 500`년보다도 오래 된 정십이면체의 돌을 발견하였다는 점에서 사실인 것 같다. 따라서 가령 피타고라스 학파가 정팔면체나 정십이면체를 몰랐다고 해도 정오각형의 성질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점은 거짓 같지 않다. 사실 오각별(정십이면체의 한 오각형 면에 대각선을 다섯 개 그어 만든 도형)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상징(symbol)이었다고 한다.

■ 이오니아식 기수법

아티카식 기수법(2`세기의 문법학자 헤로디안이 썼다는 단편에 적혀 있던 것으로부터 헤로디안식이라고도 한다)은 기원전 454년부터 95년까지 쓰인 여러 연대의 비문에서 보인다. 그러나 초기 알렉산드리아 시대인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피우스(Philadelphius)의 시대 무렵에 이오니아식, 곧 알파벳 식으로 바뀌었다. 알파벳식과 비슷한 기수법은 헤브루인, 시리아인, 아람인, 아랍인을 포함한 여러 셈족이 때로 썼고, 또 고트족과 같은 그 밖의 문화권에서도 쓰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리스식 표기법에서 빌려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이오니아식은 기원전 5`세기에 쓰이던 듯 한데 어쩌면 더욱 이른 기원전 8`세기쯤부터 쓰였는지도 모른다. 이 기호의 기원을 비교적 이르다고 보는 까닭은 이 방식에서는 알파벳 27`개 문자를 썼기 때문이다`― 10`보다 작은 정수에 9`개, 100`보다 작은 10`의 배수에 9`개, 1,000`보다 작은 100`의 배수에 9`개의 문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스의 고전 알파벳에는 24`문자밖에 없었으므로 그것에 세 개의 고대 문자를 더 포함한 더욱 오랜 알파벳을 채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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