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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시간과 역사는 수학이라는 연속체와 마찬가지로 이음새가 없는 통일체이므로 시대 구분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좌표계가 기하학에서 유용한 것과 같이 사건을 시기나 시대로 구분하는 일은 역사에서 필요하다. 정치사의 관점에서는 476`년 로마제국의 붕괴를 중세의 시작으로, 1453`년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시기를 중세의 끝으로 보는 것이 통례이다. 정치를 무시하면 고대의 끝을 524`년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해는 보에티우스가 죽은 해이고 또한 그 때 마침 로마의 수도원장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그 이후 일반적으로 사용된 서력 기원에 바탕을 둔 연표를 제안했다. 수학사에서는 제11장에서 529`년을 중세가 시작되는 해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기술했다. 그리고 중세 끝은 다소 독단적이지만 1436`년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인도 - 아라비아 숫자의 보급

13`세기에는 각계각층의 저술가가 ‘알고리즘’을 대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나, 여기서는 특히 세 사람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프랑스의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알렉산드르 드 비르듀(Alexandre de Villedieu, 활동기 1225년 무렵), 두 번째로 영국의 교사였고 사크로보스코(Sacrobosco)로도 알려진 핼리팩스의 존(John of Halifax, 1200~1256`무렵), 세 번째로 이탈리아의 상인으로 피보나치(Fibonacci), 곧 ‘보나치오(Bonaccio)의 아들’로서 더 잘 알려져 있는 피사의 레오나르도(Leonardo of Pisa, 1180~1550`무렵)가 있었다. 알렉산드르의 <알고리스모의 노래>(Carmen de algorismo)는 시집인데, 정수에 관한 기본 연산이 완전하게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는 숫자로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쓰고 0을 하나의 수로 다루고 있다. 사크로보스코의 <알기 쉬운 알고리즘>(Algorismus vulgaris)은 계산을 실제에 입각하여 설명한 것으로 중세 후기를 통해 학교에서 사용된 천문학에 대한 그의 초등적인 작은 논문 <천체>(Sphaera)와 인기를 다투었다. 피보나치가 새로운 산법을 기술한 저작은 유명한 고전이 되었는데 1202`년에 완성되었다. 이것에는 오해를 받기 쉬운 제목 <산반서>(Liber abaci)가 붙어 있다. 그러나 이 저작은 산판에 관한 책이 아니고 인도-아라비아 숫자의 사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대수적 방법과 문제에 관한 완벽한 논문(보고서)이다.

■ 피보나치 수열

<산반서>의 대부분은 따분한 내용이지만 몇 문제는 후세의 저술가가 인용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것들 가운데 다년생 식물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아메스 파피루스에서 이미 시사된 것이었다. 피보나치는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었다

일곱 할머니가 로마로 여행을 갔다. 할머니마다 일곱 마리의 노새를 몰고, 그 노새 한 마리마다 일곱 개의 짐 꾸러미를 옮기고, 그 짐 꾸러미에는 각각 일곱 개의 빵이 들어 있었다. 또 그 빵에는 각각 일곱 자루의 칼이 준비되어 있고, 그 칼에는 각각 일곱 개의 칼집이 있었다.

<산반서> 가운데 후세의 수학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문제가 다음 문제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토끼 한 쌍이 달마다  토끼 한 쌍을 낳고 태어난 한 쌍의 토끼는 두 번째 달부터 한 쌍의 토끼를 낳기 시작한다면 토끼 한 쌍에서 시작하는 경우 한 해 동안 몇 쌍의 토끼가 태어날까?

위의 유명한 문제는‘피보나치 수열’ 1, 1, 2, 3, 5, 8, 13, 21, …, , …을 이룬다.

■ 중세 학문의 쇠퇴

유럽의 수학사를 중세 초기의 암흑시대부터 스콜라 철학 시대의 절정기까지 더듬어 왔다. 7`세기 침체의 밑바닥에서 13`세기와 14`세기의 피보나치, 니콜 오렘의 업적에 이르기까지의 진보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모든 중세문명의 노력을 모두 합쳐도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 업적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였다. 수학의 진보가 세계의 어떤 곳 ―`바빌로니아, 그리스, 중국, 인도, 아라비아, 로마 ―`에서나 꾸준히 계속되어 온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서유럽에서 브래드와딘과 오렘의 업적 뒤에 쇠퇴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1349`년에 브래드와딘은 흑사병으로 쓰러졌는데, 흑사병은 일찍이 유럽을 엄습한 재앙 가운데서도 최악의 재앙이었다. 실제로 1,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인구의 에서 `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런 참사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혼란과 도덕의 상실을 가져왔다. 14`세기에 수학 분야에서 선두에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15`세기에는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으로 더욱 황폐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학문의 쇠퇴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15`세기 동안에 쇠퇴하던 옥스퍼드 대학과 파리 대학의 스콜라 철학 대신에 이탈리아, 독일 및 폴란드의 대학이 수학의 분야에서 선두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은 그 나라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주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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