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번역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그 동안 꽤 많은 수학수업을 관찰하고 분석했던 한 사람으로서 가뭄의 단비처럼 기다려왔던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손필드(Schoenfeld) 교수님은 수학자로 그리고 수학교육학자로 살아오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얻은 경험과 지혜를 이 책 곳곳에 담았습니다. 덕분에 그 동안 수학수업을 진행하거나 관찰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중요한 문제나, 안목의 부재 또는 연구능력 부족 때문에 잘못 해석했던 측면 등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독자들도 같은 경험을 하리라 믿습니다. 이 책에서는 수학수업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수학수업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요인들을 어떻게 구조화하여 파악하고, 어떻게 그
요인들 사이의 감추어진 상호작용을 감지하는가에 대해 냉철하고 섬세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원래 제목은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목표 지향적 의사결정 이론과 그 교육적 적용(How we think: A theory of goal-oriented decision making and its educational application)》이었는데, 번역서의 제목을 《수학수업, 설명을 만나다》라고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도전해왔으나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수학수업의 숨겨진 논리’를 치밀하고 정교하게 파악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특유의 ‘수학자 정신’을 발휘하여 요리나 의료행동 등 더 넓은 범위로 일반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수학수업을 설명하려면 고려해야 할 측면이 무척 많습니다.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너무 많고, 상충되는 요구 또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학교사, 수학교육연구자, 교육과정 개발자, 교과서집필자,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방식 으로 수학수업을 바라보며, 동일하지 않은 목소리를 냅니다. 이렇게 복잡한 요인으로 그리고 임시방편적인 다양한 해석으로 연구자를 난처하게 하는 상황은 이 책의 저자인 손필드 교수님을 아주 많이 괴롭혔습니다. 다음 글에서 그 괴로운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필자가 수학교육연구를 위해 수학을 떠날 때 무척 힘들었다. 폴락이 “수학교육에는 증명이 없다.”라고 말했듯이 수학과 수학교육은 너무 달랐다. 마치 ‘죽음과 세금’ 외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는 유명한 속담처럼 사회과학에서는 확실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수학의 왕국에서 통용되던 화폐인 증명과 그 증명이 보장해준 특별한 종류의 확실성을, 수학에서 수학교육으로 옮겨올 때 버려야 했다(본문 3장 중에서). 이 책은 손필드 교수님이 위와 같은 한탄과 고민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나름의 일반성’ 과 ‘특유의 설명력’을 갖춘, ‘수학수업에 대한 이론’을 개발한 과정과 그 결과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수업장면을 드디어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느꼈던 저자의 희열은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5장과 6장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요즘 대세인 ‘학생 중심’의 수학수업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하고, ‘지루한 설명’이나 ‘방임’처럼 보이는 방식에 의해 수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일이 ‘수업을 진행한 교사의 입장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논의합니다. 이 책에서 하는 수학수업에 대한 설명은 종종 이렇게 수업을 이끈 교사가 자신도 모르게 또는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의 의미와 배경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도에서 저는 우리나라 수학수업의 고유한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학문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학수업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기르고자 하는 연구자들 그리고 교사들, 수학수업의 전반적인 측면과 세부적인 측면을 이해하고자 하는 예비교사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수업분석틀과 분석사례는 수업에 대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를 파악하게 하고, 그것을 논의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입니다. 섣부르고 피상적인 비판은 언제나 백해무익합니다. 저자가 전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연구자임에도 불구하고 수학수업의 ‘한 순간 한 순간’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한 마디 한 마디’에눈과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서 건강한 비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학수업 그리고 우리나라의 수학교사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가 주어지는 이 때, 이 책에서 시도한 세밀한 분석방법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합니다.
-옮긴이 머리말 중에서-